‘88꿈나무’라고 선배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담배마저 88로 배운 386세대의 막내둥이^
‘95년 첫 입사를 할 때만 해도 평생직장…까지는 아니더라고 아주 오랜 시간을 직딩으로 살아갈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허나, 세상사는 변하고 또 변해 잘 나가던 회사는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고,나라 경제마저 ‘97년이 지나서는 외벌이 봉급만으로 살기엔 벅찬 삶이 지속되었다.
사원, 대리 시절에는 뭔가를 배우고, 리더를 존경하고, 업무에서 희열도 느끼며 살았지만,
그 이상의 직책에서는 조직내의 비합리성, 보고를 위한 보고,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분쟁의 연속이 되었다.
그 사이 비정규직, 갑을관계, 계약직 등 듣보잡 단어들이 주변에서 스물스물 일어나고,
난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틈나는 대로 인터넷과 주변을 뒤지곤 했다.
아무런 경제적 기반 없이 순수 급여(외벌이)만으로 수도권에서 시작한 결혼생활은 한 동안 나름 ♬ 룰루랄라 ♬ 였지만, 아이가 둘이 되고, 아들의 이름으로 드리는 부모님 생활비(?)까지…
늘기는 커녕 조금만 방심하면 무너질 듯한 통장잔고는 그나마 남아 있던(원래 야윈체질) 내 살까지 야금야금 축내고 있었다.
“ 뭔가 변화가 필요해…
지금 이대론 현상유지 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고민하는 도시 곰..)
그런데, 특별한 기술이나 쌓아둔 현금, 기발찬 아이디어…
가 없는 상태에서는 직장생활말고는 아무런 해답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론일게다.
그러다가 눈을 돌린 곳이 농촌^.^
일단은 초기 목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새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큰 이점이었다.
(물론 정상적으로 시작하려면 집, 땅, 농기구 등 목돈이 필요하다)
취농을 하기로 했다.
급여는 반토막이 나고 컴 대신 삽을 들어야 하지만,
초기 투자비용의 시간을 벌 수 있겠다 싶어 그리 결심했다.
주변의 여럿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짤릴 때까지는 버티지 와 나가노?” (기냥..)
“돈 많냐?” (아니…)
귀농이란 말에 나름 의미있는 선택을 했다고 응원을 해 주는 이들도 많다.
“가거들랑 터 잘 잡아놔라.” (당근이쥐..)
“차라리 니가 부럽다.” (니는 마누라가 더 잘 벌잖어.. 아이엔비유~투)
6월은 하루하루가 마지막이다.
16년의 직딩 생활은 이 달로 끝이 나고,
난 7월부터는 제 2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경제적인 것만 생각한다면 결코 할 수 없는 결정.
그래도 난 go 다. 못 먹어도 GO!!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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