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50년, 지금의 이란 고원에서 페르시아가 일어났다. 페르시아의 최전성기는 세 번째 통치자 다리우스 1세 때이다.
다리우스 1세는 사분오열되었던 오리엔트 세계를 통일하고 인더스 강에서 이집트, 마케도니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지중해를 눈앞에 둔 페르시아가 해상권을 둘러싸고 그리스와 일대 격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페르시아 전쟁이다.
이 전쟁은 사실상 오리엔트 세계와 그리스 세계 중 어느 쪽이 향후 지중해 일대의 주도권을 쥐느냐 하는 중대한 결전이었다.
싸움의 빌미는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 식민도시들이 일으킨 반란이었다. 페르시아의 압제에 반발하고 나선 이들 도시를 아테네가 원조하자, 다리우스 1세가 이를 구실삼아 그리스 원정을 단행한 것이다.
기원전 492년, 다리우스 1세는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부터 해륙양면으로 그리스 본토를 공격했다. 그러나 때마침 불어온 폭풍으로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서 되돌아가고 말았다.
2년 뒤, 이번에는 에게 해를 건너 직접 아테네로 쳐들어갔다. 페르시아 군은 아테네 북동쪽 26마일 지점인 마라톤 평원에 상륙했다. 겁에 질린 아테네 인들은 항복하자는 쪽과 싸우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라진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때 유명한 정치가이자 웅변가 테미스토클레스가 나섰다.
'우리의 아테네를 자유의 도시로 지키든지, 항복해서 시민들 모두 노예가 되든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 여러분은 노예가 되길 원하는가?'
그의 웅변에 용기백배한 시민들은 총동원하여 중장보병으로 전선에 나섰다. 그렇지만 중과부적 이윽고 사령관 밀티아데스는 적을 골짜기로 유인, 양쪽에서 협공하는 전술을 썼다. 결국, 페르시아 군은 6,400명의 전사자를 내고 후퇴하고 말았다. 아테네 군의 피해는 전사 192명뿐이었다.
그날, 전투 결과를 걱정하며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 기진맥진한 모습의 전령 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겼다!'
('세계사 100장면'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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